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찰스 3세 (문단 편집) == 여담 == * 영국에서는 군주의 이름을 따서 시대명을 칭하는 관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기간은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era),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찰스 1세]]의 재위기간은 [[찰스 시대#s-1]](Caroline era), [[찰스 2세]]의 재위기간은 철자를 약간 달리해서 [[찰스 시대#s-2|Carolean era]]라고 하는 식이다. 이에 맞추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찰스 3세 즉위 직후 의회 연설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영국이 [[찰스 시대#s-3|새로운 찰스 시대]](New Carolean age)를 맞이했다"라고 발언했다.([[https://www.gov.uk/government/speeches/prime-ministers-tribute-to-her-majesty-the-queen|의회 연설]][*원문1 The British people, the Commonwealth, and all of us in this House will support him as he takes our country forward to a new era of hope and progress, our __New Carolean age__.] [[https://www.gov.uk/government/speeches/prime-minister-liz-trusss-speech-to-the-un-general-assembly-21-september-2022|유엔 총회 연설]][*원문2 And as we say farewell to our Late Queen, the UK opens a new chapter – __a new Carolean age__ – under His Majesty King Charles III.]) 그 외에도 여러 영미권 언론들도 기사에서 찰스 3세의 즉위에 대해 '찰스 시대(Carolean age/Carolean era)가 열렸다' 혹은 '찰스 시대가 돌아왔다'고 표현했다.[*참조 [[더 타임스]] - [[https://www.thetimes.co.uk/article/what-could-the-carolean-era-mean-for-the-uk-2xxhrm0tg|What could the __Carolean era__ mean for the UK?]], [[더 가디언]] -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2/sep/09/carolean-age-dawns-britain-begins-long-goodbye-queen|__Carolean age__ dawns as Britain begins long goodbye to the Queen]], [[CTV#캐나다]] - [[https://www.ctvnews.ca/world/carolean-era-understanding-the-label-for-king-charles-iii-s-reign-1.6071874|'__Carolean era__:' Understanding the label for King Charles III's reign]], [[데일리 메일]] -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11197511/The-reign-King-Charles-III-marks-dawn-new-Carolean-age.html|__The Carolean age returns__: How the Elizabethan era ends as Britain comes under the reign of the THIRD King Charles]]] * 스포츠를 매우 좋아해서 어린 시절부터 1992년까지 [[폴로]]를 했다. 2005년까지 공무 포함 비공식적으로 폴로를 계속했고, 영국에서 동물사냥이 금지될 때까지 여우 사냥도 많이 했다. * 식물도 매우 좋아한다. 자신이 직접 정원을 설계하고 만들어서 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1986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만나는 식물과 대화를 나눈다."라고 했다가 미친 것 아니냐며 언론에서 엄청난 조롱을 받았다.[* 물론 이 당시에는 조롱을 받았지만, 현재는 오랫동안 환경 친화적인 행동을 보여온 점이 오히려 높게 평가 받고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에는 [[큐 왕립 식물원]]의 새로운 후원자가 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나무를 직접 심고 있는데 다 심고 나면 마치 악수를 하는 것처럼 줄기나 가지를 잡고 흔들어 준다고 한다. * [[엘리자베스 2세]]에게 21살 생일 선물로 받은 [[애스턴 마틴]] 차량을 '''50년 넘게 타고 다니고 있다.''' 정확한 차종은 [[애스턴 마틴 DB6]] 컨버터블 모델. 2008년에 바이오에탄올 연료로 움직일 수 있도록 차량을 개조했는데, 영국산 화이트 와인과 치즈 제조공정에서 나온 유청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마다 차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560|#]] * 이러한 환경 친화적인 행동은 국왕이 된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왕이 된 후 모든 왕실 거주지의 요리에서 [[푸아그라]]를 금지시켰으며,[[https://www.yna.co.kr/view/AKR20221119004600085|#]] 왕이 된 후 비건 요리사를 채용하는 공고가 올라온 바 있다.[[http://www.chemic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22|#]] * [[도싯]] 주 내에 속해 있는 파운드버리의 도시 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다. 도시는 찰스 3세의 평소 철학을 반영해 불필요한 동선을 줄였으며, 차량용 표지판과 신호등을 없애 차량의 통행이 불편하도록 만들어 보행자 중심의 도시로 설계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차 없는 도시의 개념을 도입했던 것이다. 심지어 가로등이나 횡단보도, 표지판도 최소한으로만 설치했으며, 건물 외양도 모두 비슷한 색상으로 맞추었다. 그 대신 새들이 머무를 수 있는 새집과 야생동물 이동 구멍을 건물마다 설치하고, 바이오 연료를 도입하는 등 자연친화적인 도시 환경을 만들었다. 또 서민들을 위해 훨씬 저렴한 주택을 만들어 공급했다. 환경친화적인 개념의 도시 설계로 시대를 앞서나갔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도시개발이 왕실 인형놀이인줄 아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의 주민들은 건물 유지, 보수, 관리를 할 때도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한다.[[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749850?sid=104|#]] * 왕세자 시절부터 [[엘리자베스 2세]]를 대신해 해외 주요 국가를 방문하는 일이 많았는데, 특히 2010년대 이후로는 여왕의 고령으로 인해 대부분의 해외 일정을 찰스와 [[카밀라 왕비|카밀라]]가 도맡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newsdaily.kr/69092_53459_2616.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rince-Charles-Princess-Diana.jpg|width=100%]]}}} || * 1992년 11월에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이때의 한국 방문은 전처인 [[다이애나 스펜서]]와 별거하기 전에 부부 동반으로 수행한 마지막 공무이자 해외 순방이기도 했다.[* 당시 부부 동반 한국 방문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왕세자 부부의 불화설이 불거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부부가 동반으로 해외를 방문해 공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부부 사이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방법이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초기 에든버러 공의 염문설이 돌 때마다 써먹으며 효과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두 사람의 갈등은 더 곪아갔고, 결국 한국 방문 후 별거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청와대]]를 방문해 [[노태우]] 대통령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으며, 파주에 있는 영국군 전적지를 찾아 헌화했다. 마지막 날에는 [[경주]]를 방문해 [[석굴암]] 등을 관광했다.[[https://youtu.be/rGNIeLtvo5s|당시 영상]] 당시 두 사람이 머물렀던 숙소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었는데, 그로부터 7년 후인 1999년 국빈으로 방한한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이 같은 방에서 거처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hongkongfp.com/1-12.jpg|width=100%]]}}} || *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 기념식에 [[엘리자베스 2세]]를 대신해 참석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때 홍콩에 방문하려고 했지만 고령에 따른 건강 문제가 거론되어서 찰스 왕세자가 대신 온 것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홍콩 반환 후로도 25년을 더 살았다. 다만 고령일수록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기는 하다.] 왼쪽은 당시 [[중국 주석]] [[장쩌민]], 오른쪽은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이날 행사에는 1980년대에 [[홍콩 반환]] 원칙에 합의한 양국 정상 가운데 [[마거릿 대처]] 전(前) 영국 총리는 참석했지만, 중국의 [[덩샤오핑]]은 아쉽게도 5개월 전 사망했다. 대신 덩샤오핑은 유언에 따라 화장된 유해가 [[홍콩]]에 뿌려졌다. 사진에 나온 장쩌민 주석 역시 엘리자베스 2세와 동갑인 1926년생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한 후 2022년 11월 30일에 사망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찰스3세_테리어.webp|width=100%]]}}} || * [[웰시 코기]]를 좋아했던 [[엘리자베스 2세]]처럼 [[잭 러셀 테리어]]를 매우 좋아한다. 2017년 초에 입양한 블루벨과 베스라는 이름의 암컷을 키우고 있으며, 두 마리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 특히 블루벨은 숲에서 피부병으로 인해 다 죽어가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가 구조된 후 극적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유기견이 로열 펫이 된 것은 역사상 최초이다. 블루벨과 베스 전에는 푸(pooh)라는 이름의 잭 러셀을 키운 적이 있는데,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 근처에서 줄도 안 매고 산책시키던 중에 숲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바람에 실종되었다. 이때 왕세자가 직접 개를 찾는 광고를 신문에 올려 화제가 되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 1980년에 '로크나가르의 노인(The Old Man of Lochnagar)'라는 제목의 아동 도서를 출간해 작가로 데뷔한 적이 있다. 찰스 3세가 어린시절 남동생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평소 관심사인 자연과 환경에 대한 책을 저술했다. * 슬하에 딸, 정확히는 1남 1녀를 원했기 때문에[* [[다이애나 왕세자비|다이애나]]의 폭로 인터뷰에 의하면 둘째를 임신했을 당시 찰스가 딸이라고 생각하면서 결혼한 이래 금슬이 가장 좋아졌으나, 낳고 보니 이번에도 아들인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해리 왕자]]가 태어나자 급실망한 찰스로 인해 부부관계가 더 냉각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외조카인 [[자라 틴달|자라]]나 손녀인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샬럿 공주]]를 예뻐한다고 한다. * 키는 178cm로 전 아내 다이애나와 키가 같으며, 191cm인 장남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윌리엄]], 186cm인 차남 [[해리 왕자|해리]], 183cm인 아버지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 막내동생인 [[에드워드 왕자]]보다는 작다. 아들들인 윌리엄과 해리 모두 어머니 다이애나를 닮아 장신이다. 사실 찰스도 딱 현재 영국인 남성의 평균 키로[* 그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오히려 평균보다 큰 키다.] 키가 작은 건 아니다. [youtube(ZQTPdEKGEBs)] * 2012년 5월 11일에는 [[BBC]] 뉴스의 일기예보에 출연해서 눈길을 끌었다. * 1985년에 [[브레이크 댄스]]를 춘 적이 있다.[[https://youtu.be/60XvRbJ_qZo|#]] [youtube(Wnsl9WR_pFY)] * [[케임브리지 대학교]] 재학시절 교내 연극 동아리에서 [[배우]]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https://www.townandcountrymag.com/society/tradition/g28690847/prince-charles-cambridge-trinity-college-photos/|#]] * [[대체의학]]을 지지한 흑역사가 있다. 2004년 항암치료의 일환으로 [[https://naver.me/x9cFlW0M|커피를 이용한 관장]] 비법을 제안해 영국 의학계가 항의한 일이 있다.[* 의외로 역사가 오래 되었다. 1917년 독일 의사 막스 거슨이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 당연히 따라해서는 안되는 짓인데, 신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인 항문에 커피를 부었다가 대장에 화상을 입거나 천공(구멍)이 생기면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대장의 특성상 세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 로렌스 밴 더 포스트의 열렬한 팬이었다. 더 크라운에서 카밀라의 대사 "웨일스 공은 절대로 점심을 안 먹어요, 이게 다 그 '구루' 때문이죠."로 언급되는 바로 그 인물. 탐험가, 환경보호가, 작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누렸던 인물인데, 정신적 측면에서 찰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찰스가 특별히 윌리엄의 대부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을 정도. 문제는 이 양반이 죽고 나서 그가 저서에 쓴 내용들에 심각한 수준의 과장과 허풍이 너무 많고, 사실은 차별주의적 측면이 강했으며, 여러 여성들과 불륜 관계에 있었던데다, 심지어는 14세 소녀와 성관계를 가졌고 결국 그 소녀는 사생아를 임신, 출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찰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의 사람들은 로렌스 밴 더 포스트를 근거로 찰스의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곤 한다. 참고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찰스가 다이애나에게 적극적으로 독서를 권했지만 다이애나는 읽기를 거부했다던 일화가 제법 알려져 있는데, 그 책들도 사실은 다른 철학서나 고전이 아니라 바로 이 문제 많은 로렌스 밴 더 포스트의 책들이었다. * [[아미 해머]]의 증조부 아만드 해머와도 상당히 가까웠다. 아만드 해머는 찰스의 여러 사업과 프로젝트에 거액의 기부와 투자를 했고, 본인이 소유했던 훌륭한 전용기를 찰스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찰스는 그에게 엄청난 호감을 가졌고 윌리엄의 대부로까지 삼으려 했는데, 다이애나의 격한 반대로 다행히 무산되었다. 아만드 해머를 비롯한 해머 가문 사람들의 여러 어두운 진실들이 밝혀진 지금은 찰스의 흑역사로 꼽힌다. 찰스에 대한 주요한 비판 중 하나는 그가 수상한 사업가들에게 너무 쉽게, 자주 끌리고 그들과 지나치게 긴밀한 유대를 맺어왔다는 것인데, 바로 그 근거로 아만드 해머와의 인연이 언급되곤 한다. * 영국 국왕 중 최초로 부계와 모계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와 아버지 [[필립 마운트배튼|필립 공]]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현손들이다.][* 유럽의 군주들 중에서 부계와 모계가 모두 빅토리아 후손인 상태로 왕위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은 [[루마니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 [[미하이 1세]]로, [[1927년]]에 찰스 3세보다 95년 먼저 즉위했다.(1차 재위 기준) 부왕 [[카롤 2세]]가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 [[알프레드 어니스트 앨버트|알프레드 왕자]]의 외손자였고, 모후 [[그리스와 덴마크의 엘레니|엘레니]]가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황후]]의 외손녀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물은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로, [[1964년]]에 찰스 3세보다 58년 전에 먼저 즉위했다. 부왕 [[파블로스]]가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빅토리아 황후]]의 3녀 [[조피 도로테아 울리케 알리체|조피]]의 아들이었고, 모후 [[프리데리케 루이제|프레데리키]]는 빅토리아 황후의 장남 [[빌헬름 2세]]의 외손녀였다. 세 번째 인물은 [[스웨덴]]의 현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로, [[1973년]]에 찰스 3세보다 49년 전에 먼저 즉위했다. 아버지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가 빅토리아 여왕의 3남 [[아서 윌리엄 패트릭 앨버트|아서 왕자]]의 외손자였고, 어머니 지빌라 왕자비는 빅토리아 여왕의 4남 [[레오폴드 조지 덩컨 앨버트|레오폴드 왕자]]의 손녀였다. 네 번째 인물은 [[스페인]]의 현 국왕 [[펠리페 6세]]로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빅토리아 여왕의 5녀 [[베아트리스 메리 빅토리아 페오도라|베아트리스 공주]]의 장녀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의 손자이고, 모후 [[소피아 왕대비|소피아]]가 앞서 언급된 콘스탄티노스 2세의 누나이다.] * 영국 국왕 중 최초로 러시아 황실인 [[로마노프 왕조]]의 후손이다.[* 증조할머니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그리스의 올가 왕비]]가 [[니콜라이 1세]]의 친손녀다.] *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스페인 국왕]]의 왕비 [[소피아 왕대비|소피아]],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와 6촌이다.(아버지들끼리 친사촌간) 또한 소피아와 콘스탄티노스의 고종사촌인 [[루마니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 [[미하이 1세]]와도 6촌이다. * 1969년에 웨일스 공으로 즉위하고 [[웨일스어]]를 배웠기 때문에 웨일스 방문 시 영어와 웨일스어로 연설했다.[[https://v.daum.net/v/20220917154139001|#]] 독일어에도 능통하며, 독일을 방문할 당시에는 독일 의회에서 [[독일어]]로도 연설을 했다. * 영국 해외 성서공회가 발행했던 [[킹 제임스 성경]] 400주년 기념판 성경책 서문을 썼다. * 1994년에 호주에서 [[맥쿼리 대학교]]의 한국계 학부생 ‘데이비드 강’에 의해 '''암살을 당할 뻔 했다.''' 암살 미수범은 공포탄 내지 신호탄을 사용하였는데 아무리 실탄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이 한국계 학생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었고 곧 재판까지 갔지만 살상 무기를 쓴 게 아니라는 점과 반성하고 있다는 점, 정신병력 등으로 감형받고 사회 봉사만 하는 걸로 판결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잊혀지다가 [[시드니 공과대학교]]와 [[시드니 대학교]] 졸업 후 2006년에 변호사가 되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5/02/06/2005020670103.html?outputType=amp|#]] *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당시에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와 악수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논란이 이어지자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무가베와의 악수는 피할 수 없었지만, '''현재 짐바브웨 정권은 혐오스럽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 고령의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조지 5세]]나 [[엘리자베스 2세]]처럼 주빌리 행사를 치르게 될 가능성은 낮다.[* 73세의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재위 25주년 [[실버 주빌리]] 행사를 치른다고 해도 98세가 된다. 만약 실버 주빌리 행사를 치른다면, 엘리자베스 2세가 가졌던 영국 역사상 최장수 군주 타이틀도 찰스 3세가 보유하게 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_128727498_letterhansons1.jpg|width=100%]]}}} || * 2023년 2월 23일, [[잉글랜드]] 워릭셔주에 있는 한 주택의 다락방에서 찰스 3세가 어린시절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에게 쓴 편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편지는 찰스 3세가 여섯 살이던 1955년 3월 15일에 작성된 것으로, 편지지에 [[버킹엄 궁전]]의 로고가 새겨져 있어 궁전에서 쓴 편지임을 알 수 있다. 편지에는 '''"할머니께.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파요. 빨리 나으시기를 바래요. 사랑을 담아, 찰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편지는 [[영국 근위대|여왕의 호위부대]]에서 근무했던 롤랜드 스톡데일이 수집한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처박혀 있다가 손자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스톡데일은 1980년대에 이미 사망해 어떠한 경위로 편지를 갖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시종이 스톡데일 부부에게 보낸 편지와 왕실 만찬의 메뉴판, [[밸모럴 성]] 댄스파티 초대장,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서명이 담긴 쪽지, 1955년 [[조지 6세]] 추도식 초대장, 1956년 [[엘리자베스 2세]]의 성탄절 연설 사본이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https://www.bbc.co.uk/news/uk-england-coventry-warwickshire-64746558.amp|#]] 이중에서 찰스 3세가 어린시절에 쓴 편지의 가치는 2,000~3,000 파운드로 책정되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